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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인터뷰에 나오면 많은 사람들은 비슷한 인상을 받는다. “확실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가능성의 범위 안에서” 같은 표현들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계속 듣다 보면 과학자들은 늘 책임을 피하는 것처럼, 혹은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과학자들의 발언을 답답하게 느끼고, 때로는 명확한 말을 해주지 않는다고 불신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인상은 과학자의 태도라기보다, 과학이 작동하는 방식에서 비롯된 오해에 가깝다.

 

이 오해는 우리가 전문가에게 기대하는 역할과 과학자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생긴다. 사람들은 전문가라면 “이게 맞다” 혹은 “이건 틀리다”라고 분명히 말해주길 바란다. 특히 정책이나 생활과 연결된 문제일수록 그런 기대는 더 커진다. 반면 과학자는 관측과 실험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말하려 한다. 조건과 전제를 떼어낸 단정은 과학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간극이 설명되지 않으면, 과학자의 신중함은 우유부단함처럼 들리기 쉽다.

 

과학적으로 보면 ‘말을 아낀다’는 태도는 책임 회피가 아니라 책임의 다른 형태다.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그 범위를 함께 제시하는 것이 과학의 기본 윤리이기 때문이다. 확률, 오차 범위, 가정 조건을 함께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표현은 결론을 흐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결론이 어디까지 유효한지를 명확히 하기 위한 장치다. 하지만 이 언어는 미디어나 일상 대화의 언어와 잘 맞지 않는다. 그 결과 과학자의 발언은 늘 조심스럽고 애매한 말처럼 편집된다.

 

결국 과학자가 말을 아끼는 것처럼 들리는 이유는, 우리가 과학의 언어를 결정의 언어로 번역해 듣기 때문이다. 과학은 확실성을 약속하지 않고, 선택에 필요한 정보의 범위를 제시한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과학자는 늘 망설이는 사람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과학자의 신중함을 답답함으로 느끼는 순간, 우리는 과학이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정보—불확실성의 크기—를 함께 놓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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